가는 때 슬프지 않은 적 없다
아버지 댁에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실행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차를 출발하려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訃告, 이○○ 님의 모친] 문자 앱을 눌러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訃告, 이○○ 님의 모친 故 김○○ 님께서 2023년 11월 19일 별세하셨기에….’
주말 동안 받은, 세 번째 부고 문자다.
차를 돌려 메시지가 안내하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보이는 거라곤 ‘곤포 사일리지’라고 불리는 마시멜로뿐인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장례식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도 장례식장이 있구나 싶었다.
주차하기 위해 빈자리를 찾고 있는데 상주인 친구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담배를 입에 문 채 장례식장 입구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녀석의 다리 사이를 훑고 지났다. 바지가 흩날리자, 앙상한 형체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 깃대만 겨우 남고, 깃발은 비바람에 뜯기고 헤져 오간 데 없구나.
스타렉스 한 대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자 상복 꾸러미를 안은 채 들어가는 녀석이 보였다. 뒤따라 뛰려다 그만두었다. 아직 상복도 갈아입지 않았는데 너무 빨리 온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 1층 로비 중앙에는 커다란 기둥이 있었고 기둥 좌우로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기둥 앞쪽에는 ATM기가 있고 건너편에는 모니터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처음 온 사람이라도 이곳에선 무얼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려는 듯했다. 나름 효율적이고 더러 세속적인 인테리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접객실은 장례를 준비는 가족과 친지들로 어수선했다. 빈소에 들어서자, 장례복으로 갈아입은 친구가 눈인사를 건넸다. 향을 피워 향로에 꽂고 절을 올려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우리는 흡연실로 자리를 옮겼다. 친구는 내게 언제 돌아가셨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평소 건강이 어떠셨는지를 들려주었다. 녀석의 말은 때로는 빨랐고, 때론 느렸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이 흡연실 안에 잔잔하게 울렸다. 담배를 피워 든 녀석의 손이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로비에 있던 모니터를 다시 한번 보았다. 각 모니터는 고인들의 빈소와 장지를 안내하고 있었다. 고인의 이름 아래 늘어선 상주들의 이름을 찬찬히 훑었다. 고인은 여섯의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친손과 외손까지… 내 부모와 달리 모니터 화면이 빽빽할 정도로 참 많은 자식을 두셨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이가 적지 않아 큰 위로겠다 싶었고, 보내는 이 또한 적지 않아 당신 가시는 길 외로움이 덜 하겠다 싶었다.
생이 오는 때 기쁘지 않은 적 없고,
생이 가는 때 슬프지 않은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