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블랙다운 블랙 만년필 잉크
다른 잉크에 밀려 쓰임이 없었던 파카 블랙 잉크를 마저 써야지 싶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1/3가량 남은 오로라 잉크를 파카 블랙 잉크에 넣었다. ‘아뿔싸!’ 잉크를 넣는 순간, 곰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확인해 보니 바닥에는 이미 침전물이 깔려 있었다. ‘언제 샀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9년 전이다.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냥 방치해두었던 게 살짝 후회된다.
오로라 잉크 대신 예전에 시필해 보았던 이로시주쿠의 블랙 ‘죽탄’을 주문했다. 오로라 잉크는 잉크 흐름을 막기 위해서 내부에 플라스틱 마개가 하나 더 있다. 문제는 손에 잉크를 묻히지 않고서는 이 마개를 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악마의 뚜껑’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나 또한 이 ‘악마의 뚜껑’ 때문에 몇 번의 난리를 겪고 나니 재구매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몹쓸 것을 보았다. ‘오로라 100주년 기념 – 카라바지오 네로’ 결국 오로라 잉크를 또 구매했다. 사각형의 정규 블랙 잉크와는 용기 디자인이 달라서 구조 또한 다를 거라는 기대는 허망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똑! 같은 악마의 뚜껑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전처럼 책상과 방바닥을 달마티안 점박이로 만들어 버리는 똑!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청소를 하고 스와치 카드를 만들었다. 오로라 ‘일반 블랙’과 ‘100주년 기념 블랙’은 완벽하게 똑! 같은 잉크다. 긴 현타의 시간을 갖고… 다음엔 ‘검색 같은 것도 좀 하고 사야겠다’는 다짐. 어쨌든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가장 블랙다운 블랙을 찾는다면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따뜻한 숯과 같은 오로라 블랙이나 차갑게 식은 새까만 숯 이로시주쿠 죽탄을 추천한다.
청색이 도는 차가운 블랙 :
이로시주쿠 죽탄, 플래티넘 카본 블랙, 몽블랑 미스터리 블랙, 교토 누레바이로 블랙, 윈저앤뉴턴 블랙(딥펜용 안료 잉크)
적색이 도는 따뜻한 블랙 :
오로라 블랙 & 100주년 블랙, 파카 큉크 블랙, 오션웨일 블랙(딥펜용 안료 잉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