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까닭 없이 죽고 싶었다
까닭 없이 세상이 지겨웠고
까닭 없이 오그라들었다
긴 잠을 자고 깬 오늘은
까닭 없이 살고 싶어졌다
아무라도 안아주고 싶은
부드럽게 차오르는 마음
죽겠다고 제초제를 먹고 제 손으로 구급차를 부른 형,
지금은 싱싱한 야채 트럭 몰고 전국을 떠돌고
남편 미워 못 살겠다던 누이는 영국까지 날아가
애 크는 재미로 산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오고
늙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고기반찬 없으면 삐지는 할머니
살고자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
이병승 詩 –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사노라면 누구에게나 죽고 싶은. 아니, ‘살고 싶지 않은’ 때를 맞는다. 지난날들이 허망하게 느껴지거나 당장 내일의 삶이 막막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커피 한 잔, 담배 한 모금과 같은 소소함만으로도 ‘이 맛에 사는 거지’라며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곤 한다.
“살고자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 사실, 진정 까닭이 없겠는가. 매 순간, 묻고 따졌던 불같은 시절을 지나, 이제는 죽고 싶거나 살고 싶은 본능이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깨달아 단지 ‘까닭 없음’이라는 말로 까닭의 구차함을 건너뛰는 것일 뿐일 것이다.
반복되는 삶의 질곡을 대면할 때마다 결국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답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내면과 태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이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