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하지 못했다
5·18 민주화운동 45주년 전야제가 있던 날에도 아버지를 뵈러 광주에 갔다. 전야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병원과는 거리가 멀어 애초에 들를 생각이 없었다. 점심때까지 아버지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긴 시간 운전으로 뻣뻣해진 몸은 어서 돌아가 쉬라며 재촉했다. 하지만 피로를 핑계로 그냥 가면, 돌아가는 내내 마음의 짐이 될 것 같았다. 결국 ‘잠깐이라도 둘러보자’ 고 마음을 고쳐먹고 운전대를 돌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몇 차례 스쳐 지났을 뿐 자세히 알지 못한다. 문화전당 부설 주차장에서 민주 광장까지는 동명동 골목을 따라 십 분 남짓 걸어야 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통유리 카페들과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낯선 여행지에 온 듯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도시의 북적임은 나를 환영하는 세리머니였고, 소란함은 배경음악 같았다.

독특한 형태의 건물들과 광장을 오가는 수많은 얼굴들. 민주광장으로 향하는 동안 시선은 호기심을 따라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익숙한 첫 소절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순간, 거짓말처럼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제멋대로 흩어져 있던 풍경들이 비로소 하나의 의미로 정렬되었고, 온몸으로 뻐근한 기운이 퍼지며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민주평화교류원 사이길이었다. 스무 명 남짓한 합창단이 두 줄로 서서 노래하고 있었다. 그 주위로 모여든 사람들은 숨을 죽여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저마다의 목소리로 나직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상무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원 공사 중인 옛 건물 벽면에는 5·18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그 앞에 모여 선 외국인들은 해설자의 설명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전일빌딩을 지나 금남로 차 없는 거리로 들어서자, 배움의 열기로 가득 찬 대학생들과 다양한 부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도로 중앙에는 아이들이 아스팔트 위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5·18’이라는 숫자, 헬리콥터, 손을 든 사람들. 무엇을 그리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후텁지근한 여름의 초입, 시간은 오후 네 시를 넘기고 있었다. 광장 중앙 무대 스피커에서 별다른 예고 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 광장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목청껏 소리 내는 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주먹을 쥐고 리듬에 몸을 맡기는 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래는 광장 위로 번져나갔다.

하지만 나는 노래하지 못했다. 익숙한 가사는 혀끝에서만 맴돌 뿐, 어떤 소리도 되지 못했다. 나의 목소리는 내가 사는 곳의 공기 밀도에 맞추어, 내 언어의 부피를 줄이며 살아왔다. 삼키는 것이 유리했고, 적당했다. 반복은 습관이 됐고, 습관은 내 안의 소리를 지웠다. 내뱉는 대신 삼키는 행위만이 더 익숙해져 목소리는 안으로 단단하게 굳어갔다.
광주는 달랐다. 그들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역사를 기억하려는 마음은 아이들의 손끝으로, 학생들의 눈빛으로, 어른들의 몸짓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산천이 알 수 있는 것은,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그들 덕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