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차를 타고 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도착했다. 연휴로 인해 방문객이 많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병동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간병인이 아버지를 휠체어로 옮기려는 참이었다. 넘어지지 않으려 간병인의 목을 감싸고 있는 아버지의 손가락이 애처로워 보였다.

도움이 될까 싶어 다가갔지만, 간병인이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 나는 침대와 휠체어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실수를 만회하고자 아버지를 뒤쪽에서 안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새 겨드랑이 사이로 간병인의 손이 쑥 빠져나왔다. 수십수백 번을 반복한 듯한 그의 능숙함 덕분에 아버지는 수월하게 휠체어에 옮겨 앉았다. 쓸모 없어진 내 손은 갈 곳을 잃고 허공만 민망하게 휘저었다.

“아드님께서 휠체어를 밀어주시겠어요?” 안전벨트를 채우며 간병인이 내게 물었다. 병원 앞 공원을 떠올리며, 그러겠다 답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감염 예방을 위한 집중 치료 중이라 다른 층으로의 이동은 제한된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공간은 짧은 복도뿐이었다.

복도를 다람쥐처럼 맴돌다 보니 병동의 간호사가 몇 명인지, 유니폼에 따라 하는 일이 무엇이 다른지, 환자들이 어떤 사유로 입원하게 되었는지… 등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은주’, ‘민주’, ‘민선’처럼 간호사들의 이름은 대체로 어딘가 서로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 반해 환자들의 이름은 ‘박*수’, ‘조*례’, ‘김*호’처럼 각자의 삶만큼이나 다채로웠다.

봄볕이 복도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왔다.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가 아버지의 그림자 위로 포개어졌다. 문득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와 맥주를 마시던 남자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림자도 겹치면 짙어질까요?” 나 역시 궁금했다. 그림자들이 겹쳐진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버지, 최연주 기억하지?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자주 우리 집에 왔던…. 왜 그 키 작은 연주 있잖아.”
아버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한테 전화 왔어요. 아버지 잘 계시냐고…”
아버지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정확한 기억에 따른 것인지 궁금했지만, 알 수는 없었다. 장아찌를 챙겨 주시던 지난해 가을 이후, 몇 달 새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낯섦이 낯익어지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가 위에민준의 ‘The Tao of Laughter’라는 작품이 있다. 팔짱을 끼고 웅크려 앉아 활짝 웃고 있는 남자 조각상이다. 조각상의 등 근육은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단단하고 선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연약하고 희미하다. 어쩌면 내 앞에 있는 이가 다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김영하의 소설 『오직 두 사람』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휠체어를 옆으로 돌려 아버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았다. 아버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문득 아버지도 나를 향해 같은 의문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휠체어를 밀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The Tao of Laugh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