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모에리버 루즈 시트 종이

만년필로 필사할 때는 어떤 종이가 좋을까?

평소 만년필 필사할 때 낱장 종이는 토모에리버 루즈 시트를 자주 사용합니다. 토모에리버 루즈 시트는 펄, 색 분리, 농담, 테, 광택, 발색 등 잉크 본연의 성질을 잘 받아줘서 만년필에 아주 적합한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평활도와 광택이 좋아서 글씨를 쓰고 나면 획 옆으로 거미줄처럼 번지는 실 번짐’ 현상도 없고, 성경처럼 펄렁거리는 얇은 종이(평량 52gsm)지만 워낙 튼튼해서 뒷면 배김도 거의 없습니다. 잉크병에 딥펜을 푹 담가서 큼지막하게 잉크를 떨어뜨려도 배김 없이 말짱하게 버텨주는 아주 튼튼한 종이입니다. 하지만 얇은 두께로 인해 비침이 심해서 사실상 뒷면은 쓸 수가 없고, 잉크가 다 말랐을 때도 종이가 쭈글쭈글 우그러지며 가격 또한 저렴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만년필로 필사할 때는 어떤 종이가 좋을까? 다음 요구 조건에 맞는 종이를 찾아보았습니다. 발색이 좋고, 뒤 비침이 없으며,우그러지지 않는, 80g ~100g 대의 종이를 찾는 것이 목적입니다.

  1. 잉크로 인한 우그러짐이 없을 만한 평량 80~100g/㎡ 이내의 뒤 비침이 없는 종이
  2. 뒷면을 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본 성능이라고 생각되는 뒷면 배김이 없는 종이
  3. 질감이 느껴지는 러프 그로스 또는 비도공지 계열의 종이
  4. 잉크의 색상을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화이트 또는 스노우 화이트 색상의 종이입니다.

종이 제작 공정

종이 제작 공정

종이 제작 과정은 조림 ▷ 펄프 ▷ 제지 ▷ 도공 과정을 거칩니다. 조림(造林)을 통해 얻은 목재를 섬유소와 유기물로 분리하는 ‘펄프’ 공정을 거쳐, 펄프에 전분 및 약품을 배합하는 ‘제지’ 공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비도공지(Uncoated)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겉면에 코팅이 없는 복사 용지, 모조지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후, 목적에 따라 ‘도공’ 공정에서 도공지(Coated)가 만들어지는데, 광택이 우수한 ‘아트지’, 매트한 ‘스노우지’, 특수 도공을 통해 비도공지(Uncoated)와 같은 표면 질감을 살린 ‘러프 그로스지’ 등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광택이 우수한 아트지는 광고 전단과 같은 곳에 많이 사용되며, 아트지에 비해 광택이 덜한 스노우지는 잡지 같은 용도에 주로 쓰입니다. 러프 그로스지는 도록이나 카탈로그에 주로 사용됩니다. 다만 이것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일반적 구분일 뿐,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기도 합니다.

종이 두께

두성종이 씨에라, 문켄디자인, 비세븐

종이의 두께는 마이크로미터(μm)가 아닌 평량, GSM(Grams per Square Meter) 단위를 사용합니다. 평량은 제곱미터당 무게를 말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80g/㎡ 평량의 종이는 가로세로 1미터의 종이가 80그램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으로 종이의 두께를 가늠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정확한 마이크로미터를 사용하지 않고 평량을 사용할까? 추측해 보건대, 종이는 재질이나 가공 방식에 따라 두께가 천차만별이고, 같은 종류의 종이라 하더라도 제조사마다 그 두께가 다르기 때문에 두께 단위보다는 무게 단위가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종이의 정확한 두께를 알아내기 쉽지는 않습니다.

가령 세네카로 불리는 ‘책등’ 디자인을 위해서는 실제 두께가 필요합니다. 이때는 제조사에서 종이 정보를 제공 시 마이크로미터도 병기하고 있으니 이를 참고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책등 값은 재본소에 종이 재질과 페이지 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얻거나, ‘용지 무게(g)x페이지 수x0.6÷1000=책등’ 공식으로 값을 가늠하기도 합니다만 1mm의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인쇄 종이 구분

인쇄 용지는 크게 코팅을 한 도공지(Coated)와 코팅을 하지 않은 비도공지(Uncoated)로 나뉩니다. 비도공지는 펄프에 따라 상질지, 중질지, 하급지로 분류하는데, 표백 화학 펄프의 비율에 의해 상질지는 백색에 가깝고 *평활도가 우수합니다. 중질지는 대체로 관공서 서류 같은 종이이며, 갱지는 하급지에 속합니다. 도공 공정이 빠진다고 해서 비도공지가 저급의 종이는 아닙니다. 도공지에 비해 단가도 높고 품질 또한 우수한 종이도 많습니다.

*평활도 : 종이 표면의 매끄러운 정도를 말한다. 매끄러울수록 인쇄 품질이 좋아서 인쇄 적성도가 높다고 평가한다.

비 도공지

두성종이 비도공지. 왼쪽부터 문켄 프린트 크림 18, 스노우 크리스탈, 오리지널 그문드, 그문드 블로커, 씨에라, 매쉬맬로우

비도공지. 왼쪽부터 문켄 프린트 크림 18, 스노우 크리스탈, 오리지널 그문드, 그문드 블로커, 씨에라, 매쉬맬로우

서너 장의 종이를 테스트해 보면서 이 포스트가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종이의 퀄리티 – 종이의 성능에 관한 것으로 실 번짐, 뒷면 비침이나 배김에 관한 것들은 명확한 기준을 만들 수 있겠지만, 종이의 질감, 농담 표현, 발색 등은 수치로 표현하기가 모호하고, 취향에 따른 영역이라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년필 종이로 사용할 수 없는 종이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소개만 하는 것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만년필에 적합하지 않은 종이들입니다. 애초에 그 용도가 만년필을 위함이 아니기에 이것이 나쁘다거나 성능이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종이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단지 만년필에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 평가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문켄 프린트 크림 18, 씨에라

문켄 프린트 크림 18은 글씨를 쓰면 거미줄처럼 번지는 실번짐 현상이 너무 심해 만년필 용지로는 적합하지 않았고, 씨에라는 실번짐은 덜 하지만 자글자글한 그레인(Grain)이 나타났습니다. 종이가 잉크를 밀어내는 느낌이었습니다. 뒷면 배김도 심해서 이 두 종이는 만년필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PC에서 사진을 클릭해서 확대해 보면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문켄 디자인 퓨어

종이는 제작 시기에 따라 그 성능이 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문켄 시리즈 샘플이 오래된 제품이라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지만, 문켄 퓨어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워낙 좋았던 터라 실망이 컸습니다. 잉크를 머금는 성질 갖고 있어서 실번짐과 그레인 현상이 살짝 보였습니다. 뒷면도 비침의 수준을 넘어 배김이 생겨 만년필 용도로 적합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문켄 크리스털과 문켄 폴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시리즈의 특성으로 보입니다.

 

오리지널 그문드 매트, 그문드 블로커

스노우 크리스탈, 매쉬멜로우

오리지널 그문드 매트, 그문드 블로커, 스노우 크리스탈, 매쉬멜로우는 모두 좋은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뒷면 배김이나 비침도 없고 발색도 우수했습니다. 특히 스노우 크리스털이 손 기름에 대한 저항이나 질감이나 발색이 가장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유통사의 판매 리스트에서 삭제가 되어 있는 상태라 구매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매쉬멜로우 스노우 화이트를 선택했습니다. 매쉬멜로우는 매끈한 질감을 가졌고 유분에도 어느 정도 버텨주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비도공지 계열에서는 매쉬멜로우를 선택했습니다. 4절 기준 1장 당 150원이며, 8등분 해서 32절(136*197)로 재단을 했을 때, 장당 단가는 19원입니다. 토모에리버 루즈 시트 A5(148*210)가 장 당 67원이니 훨씬 저렴합니다.



러프 그로스

러프 그로스. 왼쪽부터 미세스 비, 뉴 에이프릴 브라이드, 젠틀 페이스, 포커스, 메리트&유니트, 반누보, 비세븐

러프 그로스. 왼쪽부터 미세스 비, 뉴 에이프릴 브라이드, 젠틀 페이스, 포커스, 메리트&유니트, 반누보, 비세븐



미세스 비, 젠틀 페이스

포커스, 유니트

미세스 비, 젠틀 페이스, 포커스, 유니트 모두 우수한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뒷면 비침도 없고, 실번짐이나 유분에 대한 저항력도 좋았습니다. 종이의 미세한 질감 차이에 따른 필감이 조금씩 다른 것을 제외하고는 비슷했습니다. 

반누보, 비세븐

반누보는 122gsm이라 사실상 찾고 있던 종이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카탈로그나 리플릿 제작 시 많이 사용하는 종이라 만년필에는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해서 끼워 넣었습니다. 표면 질감은 느껴지지만 도공지로 분류해도 될 만큼 매끄러운 필감을 보여줬습니다. 비세븐은 러프그로스로 되어 있는데 최근 수입사 정보를 확인해 보니 도공지로 분류가 변경되어 있었습니다. 만년필 종이로 인기 있는 만큼 성능도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질감이 내가 찾는 느낌이 아닌 매끈한 질감이라 제외했습니다.


러프 그로스 계열에서 최종 선택한 종이는 뉴 에이프릴 브라이드입니다. 재질에서 서걱거림이 바로 전달된다. 콧기름을 묻히고 테스트해봤는데도 (그레인이 약간 보였지만) 괜찮았습니다. 테도 예쁘게 뜨고 번짐이 부드러워 농담도 잘 표현이 되었습니다. 평량이 105gsm이라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딥펜 필사용도로 사용하기에 제격일듯합니다. 가격은 4절 230원으로 32절 기준 29원입니다.


구분제품명규격단가(원) 특성
비도공지씨에라 | 화이트394*545 | 81.4 g/㎡ 110거미줄 현상, 뒷면 배김 적합하지 않음.
러프 그로스유니트 | 화이트394*545 | 90 g/㎡ 140발색이 살짝 아쉬움.
도공지비세븐 | 스노우394*545 | 83 g/㎡ 140유분에 약함, 농담이 아쉬움.
비도공지매쉬멜로우 | 화이트394*545 | 81.4 g/㎡ 150잘 마르지 않음.
비도공지문켄퓨어 | 화이트394*545 | 80 g/㎡ 160거미줄 현상, 뒷면 배김 적합하지 않음.
러프 그로스뉴에이프릴브라이드 | 화이트394*545 | 105 g/㎡ 230
러프 그로스젠틀페이스 | 스노우394*545 | 105 g/㎡ 260발색이 살짝 아쉬움.
비도공지오리지널그문드 | 매트 블랑450*640 | 100 g/㎡ 280발색이 좋지만 잉크를 먹음.
러프 그로스미세스비 | 화이트394*545 | 105 g/㎡ 320획이 두꺼워짐.
비도공지블로커 | 화이트348*498 | 80 g/㎡ 350표면이 거침, 미세한 거미줄 현상.
러프 그로스반누보 | 스노우394*545 | 122 g/㎡ 380120g 이상부터 판매됨. 두꺼움.

*4X6 배판 4절, 두성종이 인더페이퍼 2023년 5월 기준 



종이 구매 방법

만년필용 낱장 종이 추천 및 구매 방법

을지로 두성종이 인더페이퍼


종이 구매는 을지로 인더페이퍼 매장에 방문하여 구매했습니다. 인더페이퍼에서 종이를 구매 시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더라도 먼저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결제 시 결제시 회원 아이디가 필요합니다. 종이 크기는 4절이므로 재단을 해야합니다. 인더페이퍼 내에서 재단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으므로 구매 후 별도로 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 주문을 한다면 4절 200매 이상 주문하면, 최소 크기 A4, B4, 16절까지 재단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대신 인더페이서 근처 재단소를 안내해줍니다. 안내해 준 근처 재단소에서 재단했는데, 잠깐 전화 통화하고 왔더니 엉망으로 잘라줬습니다. 최소한 사이즈 정도는 통일시켜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확한 재단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지켜보며 정확한 요구 사항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쉬멜로우(비도공지), 뉴에이프릴브라이드(러프그로스지)를 구매했습니다. 두 종이 가격이 조금 다르지만 대략 32절(136*197) 기준, 재단 비 포함 25원에서 35원 정도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토모에리버 A5 한 장이 67원 정도이니 꽤나 경제적인 선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