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 꽤 뜨거웠던 책이다. 처음엔 설렁설렁 읽었고, 두 번째에는 정독했다. 그러고선 한동안 책장에 꽂아두었다. 얼마 전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끄집어내 읽고 난 뒤,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두 책이 조금은 서로 연결되는 지점도 있다. 세 번째에는 문장을 옮겨 적거나, 같은 문장을 너덧 번 읽기도 했다. 또 순서와 상관없이 앞뒤를 번갈아 가며 읽기도 했다. 한번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실력이 턱없이 모자라다. 그래서 좋았던 문장들 몇 개를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1906 샌프란시스코 지진, 땅에 쳐박힌 루이 아가시 조각상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 정지인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삶은 의미 없다.’라고 이미 증명되었다. 물질세계를 봐도 그렇고, 진화론, 유전학 등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없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그래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인문학적 질문을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로 살짝 바꿔볼 필요가 있다. 삶에는 주어진 의미가 없기 때문에 내가 의미를 만들지 않으면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에 우리는 각자가 답을 찾아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저마다 중요시하는 가치에 대해 무엇이 더 훌륭하다라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개인이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두는 가에 따라 ‘한 사회의 문명적 양상과 수준은 결정된다.’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 중에서, 유시민 작가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깨달음.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혹은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 정지인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 정지인
Natura non facit saltum!
“나투라 논 파싯 살툼”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우리가 보는 분류와 계급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크건 작건, 깃털이 있건 빛을 발하건, 혹이 있건 미끈하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그 어마어마한 범위 자체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라고 룰루 밀러는 말한다.
철수와 영희, 나와 당신, 심지어 내 안의 선과 악 데미안마저도.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모든 것들의 작은 그물망(룰루 밀러의 표현에 따른)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이, 이 모든 대단치 않음이 우리를 받쳐주는 힘이다.
1970년대에 태어났던 사람의 삶과 200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 살아야 할 삶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분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범주는 우리 상상의 산물이다. 평생에 거쳐 깨야할 ‘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