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온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조용히
봄, 비가 온다.



토요일이면 따뜻한 물 한 병과 야외용 매트를 주섬주섬 챙겨 광화문으로 향하곤 했다. 나설 때 뜨거웠던 마음과 달리 차가운 아스팔트에 두어 시간 앉아 있다 보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날이 좀 풀려서 따뜻해져도 늘 허리는 뻐근했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더욱 고되었다.


길바닥에서 버티는 날이 더해질수록, 비정상적인 현실이 정상인 듯 마음이 자리를 잃어갔다. 기대보다는 불신이 더 크게 자랐다. 반복되는 외침이 무뎌질 즈음, 엉덩이가 매트에 적응할 즈음, 선고일이 잡혔다. 그리고 어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선고를 내렸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됩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분노의 시간이,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점심을 먹고 창밖 봄비를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몇 주간 멈춰 두었던 필사를 다시 시작했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통필사를 시작했다. 잠시 놓아두었던 것을 다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손에 닿는 잉크 냄새가 아직 낯설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동안 아스팔트로부터 엉덩이를 보호해 줬던 야외용 매트를 창고에 넣었다. 매트의 쓰임은 집회가 아니라 들풀 깔린 공원에서 쓰이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중 하나일 것이다.

조용히, 비가 내린다.
묵은 때를 씻으려는 듯
오래도록 내린다.
아파트로만 빽빽했던 풍경이
수묵이 되었다.
우리의 날 선 마음을
이 비가,
조금은 무르게 다독여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