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회사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낡은 책 한 권. 처음 캐비닛 위에서 보았던 책이 어느 날은 소파 등받이에 끼어 있다가 또 어느 날은 빈 택배 상자 위에 있기도 했다. 둘 곳 마땅치 않지만, 그렇다고 또 함부로 버리기엔 마음 쓰이는 물건들이 있다. 책이 그렇다. 아마도 그러해서 이곳저곳을 전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데미안 헤르만 헤세

오십몇 번째 맞는 봄.

인간의 수명이 쓸데없이 길어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도 이것은 한 번의 생을 피우고 맺을 만한 시간이었다. 같은 기준으로, 현대의 지천명은 또 다른 생의 출발, 즉 두 번째 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두 번째 생에서도 ‘어른으로 성장’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다. 어쩌면 평생토록 알을 깨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데미안⟫을 만나서 알을 깨기 위한 ‘발길질’ 정도는 시도해 볼 마음을 갖게 되었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선’이든 ‘악’이든.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고 성찰하는 것. 내 안의 데미안을 마주하여 ‘온전한 나를 찾는 것’. 그리하여 나 자신에게로 이르는 것. 두 번째 생의 재미있는 탐험 중 하나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