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길 위에 김대중 –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2024년 1월 6일은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한 지 100주 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맞춰 김대중평화센터에서 기획하고, 명필름과 시네마 6411에서 제작한 다큐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했다. 민환기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민주주의를 향한 처절한 투쟁을 되짚는다. 1924년 일제강점기 전남 신안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목포의 청년 사업가에서 한국전쟁 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치에 입문한 이야기. 박정희 유신정권을 반대하다 교통사고와 납치, 살해 시도 중 구출되는 이야기. 서울의 봄을 지나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게 518민주화운동 배후 조종의 내란음모로 사형선고를 받는 이야기. 이후 정치를 그만두라는 신군부의 협박과 회유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던 이야기. 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사면 복권되어 16년 만에 광주를 방문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담겨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김대중 대통령은 대중 정치인으로서 누구보다도 확고한 민주주의자이자 의회주의자였다는 것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할 때였다. 야당은 국민적 감정에 따라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국익을 보장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그에 따른 각론 하나하나 따져가며 설명했다는 부분이다.
그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정치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치가 우선하지 않았고, 정당의 정치가 우선하지 않았다. 그의 정치는 진정으로 ‘국민의 이익’에 향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영화는 배우 장현성의 내레이션과 함께 지금껏 접할 수 없었던 희귀한 영상 자료들과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국가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을 당시 촬영되었던 옥중 영상은 인간 김대중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민환기 감독은 ‘이 영상은 김대중평화센터에서 보관하고 있던 자료이며 김대중 대통령이 사후에 공개하길 요청했다’고 전했다. 영상은 누가 촬영했고 누가 전달해 주었는지 출처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김대중과 추종자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시민들을 선동해 일으킨 봉기로 조작한 사건이다. 1979년 10·26과 12·12 사태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김대중 등을 연행했다. 계엄사령부는 5월18일엔 ‘사회 혼란 조성 및 학생·노조 소요 관련 배후 조종 혐의자’를 조사하고 있다면서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 20여 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1993년 10월 18일에 열린 국회 국정감사 법사위원회에서 민주당 강수림 의원은 “1980년 당시 계엄법에는 군법회의가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을 다룰 권한이 없는데도 유죄판결을 내린뒤 1981년 뒤늦게 계엄법을 개정하여 상식밖의 탈법을 저질렀다”고 했다. 2004년 김대중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사면 복권되었고 16년 만에 광주를 향했다. 광주를 향한 기차역마다 그를 맞는 국민들로 가득 찼다. 익산역에서 전주역에서 그리고 광주역에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그를 연호했다.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은 그가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한없이 사모하는 영령들이여! 김대중이가 여기 왔습니다. 꼭 죽게 되었던 내가 하나님과 여러분의 가호로 죽지 않고 살아서 여기 망월동의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여러분의 죽음에 의한 전 세계적인 관심과 동정의 덕택으로 구차한 목숨을 부지했지만, 나는 과연 여러분과 유족들을 위해 무엇을 했단 말입니까.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심정입니다. <중략>
추운 겨울을 고통과 외로움으로 참고 이겨낸 인동초가 해독제로 쓰이듯 나는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지나 오늘 나의 소중한 님들 앞에 서서 이 김대중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한 포기 인동초가 될 것을 굳게 약속합니다. 광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사랑하는 우리들의 고향 광주를 아직은 노래하지 않으리라고 절규한 시인의 고통의 깊이를 나는 이해합니다. 영령들이여, 부디 편히 잠드소서.
-광주 망월동 518 묘역 추모사 중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극장 안이 밝아졌다.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쿠키 영상을 확인하기 위한 이유라면 모를까 영화가 끝났는데도 앉아있는 일은 없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나에겐 무척 낯설고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아마 나와 같은 세대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진정되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다들 비슷한 처지였다. 영화가 끝났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반드시 회복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믿고 있다.
네 번의 국회의원 낙방과 세 번의 대선 실패. 다섯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형수.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그의 신념과 삶의 흔적은 독재 시대를 향해 거꾸로 폭주하는 비통한 현실에 작은 위로가 된다.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 속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모든 악과 고난을 받아들이고 또 이를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당부는 지금 우리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지 깊은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역사는 큰눈으로 볼 때에는 아직도 많은 죄와 고난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정의롭고 보다 살기 좋은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 속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모든 악과 고난을 받아들이고 또 이를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