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
머릿속에서 저울이 움직인다.

한쪽엔 ‘이익’을,
다른 한쪽엔 ‘후회’를 올려놓고
어느 쪽으로 기울지 셈한다.

그 분주한 계산 속에서 나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놓치고 만다.

‘이 선택이 나에게 기쁨인가?’ 라는 물음.


조금은 단순하고
어쩌면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는
그 물음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이다.


소설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에서
주인공 카를은 농장을 구입하기 전,
아내와 요르단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여행 내내 아내와
‘농장을 살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고,
급기야 여행 가이드에게까지 조언을 구했다.

가이드 마호메드는 대답 대신,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그 질문은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맞는가’에 가까웠다.


삶은 늘 결과보다 앞서
살아내야 하는 과정이다.

무언가를 선택한 뒤,
그 결과를 확인할 때까지는
시간이 한참 흘러야 하고,
그 사이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를 보기도 전에
이미 삶을 감당하고 있다.


삶은 성취의 목록이라기보다,
그 사이사이 흘러가는 감각들로 채워진다.

가끔은 의미도 없고,
이유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시간들.

그 시간들이 모여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삶의 모습이 된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 선택이 나에게 평화를 주는가?
이 결정은 나를 조금 더 숨 쉬게 하는가?
이것이 나의 기쁨인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결과를 예측하는 데서 비롯되지 않는다.

보장받을 수 없는 선택을
조용히 살아내는 일,
그 안에서 내가 나답다고 느끼는
감각 하나를 놓치지 않는 일.
그런 마음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이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그것이 나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는가?

그리고,
이것은 나의 기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