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설거지하다가 유리로 된 용기를 깨트렸다. 개의치 않을 걸 알지만 아내 몰래 주방 옆 베란다에 숨겼다. 건조대로 옮긴 접시에 고추장이 묻은듯해서 손으로 쓱 닦아 본다. 고추장이 아니라 피다. 싱크대 안의 물도 붉다. 깨진 유리에 베인듯했다. 밴드를 찾아 진열장을 뒤지다 결국 찾지를 못하고 출근 준비하는 아내에게 물었다.

“혹시, 밴드 있나?”
“응, 많아. 약 진열장 앞쪽. 다쳤어?”
“못 찾겠는데?”
“눈 말고, 머리로 찾아봐. 있. 을. 법. 한.”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눈에 힘 빡 주고 가늘게 뜬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관측 요령’에 따라 진열장을 수색한다. 먼저 전체 관측 후, 가까운 곳에서 먼 곳. 그러니까 진열장 아래에서부터 위로 관측한다.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중첩 관측한다. 의심되는 부분은 반복 관측한다. 눈과 머리를 총동원했다. 음,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여기까진 복용 약, 그 옆은 파스, 인공눈물, 거즈랑 알코올. 그럼 여기 어디쯤 있을 법 한데…….

“없어.”
“없는 게 아니라 못 찾는 거.”
“아니 없는 거 같은데……?”
“비켜봐, 여기 있잖아. 거즈랑 알코올 있는 곳에……, 뭐 하다 다쳤어?”
“아니, 없었어.”
“왜 다쳤냐고?”
“아깐 분명히 없었는데…….”

아내가 건네준 밴드를 받아 슬그머니 욕실로 피했다. 아깐 분명 없었던 밴드가 나왔다. 다른 곳에 있던 밴드를 몰래 손에 쥐고,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속임수를 쓴 것이라는 아주 합리적인 의심을 잠깐 해봤다.



연휴 뒤 출근이라 그런지 차가 많이 막힌다. 커브 길을 빠져나오며 꺾었던 운전대에서 손을 뗀다. 스티어링 휠이 손가락에 감긴 밴드를 긁으면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느낌이 낯설어서 운전대를 따라 원을 그리며 밴드 붙인 손가락을 스치듯 뱅뱅 돌린다. 가만두질 못하고 만지작거리다 결국 손가락에서 밴드가 쏙 빠져버렸다. 곰 발바닥처럼 손가락을 구부려보았다. 허옇게 불은 상처가 벌어지면서 피가 새어 나온다. 아직이구나 싶어 빠졌던 밴드를 다시 끼워 넣었다. 문득, 유리 용기를 깨트리고 들킬세라 서둘러 숨긴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근래 여기저기 다치다 보니 별거 아닌 상처도 숨기게 된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 작은 실수도 습관처럼 숨긴다. 가족에게도. 아니 가족이라서 허점을 보이는 게 편치 않다. 조심성 없다며 다른 이의 실수를 지적하던 캐릭터가 붕괴하고 있다.

얕게 베인…… 별거 아닌, 작은 상처가 몹시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