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야 할 때는 질 줄도 알아야 해 – 김형수
오로라 레드맘바 F닙, 로버트오스터 그레이트서던오션, 매쉬멜로우 스노우 화이트 81.4g
때깔 고운 잎이라면
시샘할 일도 아니지만 미워할 일도 아니다
가을 가고 겨울 오면…
흔적조차 없다지만 그것은 또 그것의 일
나무라면 그 나이테 안에
꽃이라면 그의 작은 씨앗들 안에
그가 땅 위에서 서툴게 누렸던
청춘을 남겼을 터
그가 사랑했던 님 앞에 닿아보기 위해
그 많은 날 애써 부대꼈던
햇살을, 비바람을
제 몸 어딘가에 감춰두고 있을 터
나는 왜 자꾸만 예민하게 구는가
져야 할 땐 아낌없이 질 줄도 알아야 해
벌레 먹은 대로
바람구멍이 난 대로
고집스레 매달려 어쩌자는가
이파리 한 잎 제 여름을 다 살고
이제 가을 되어 아낌없이 져야 할 때
나 혼자 지지 못하고
늦도록 가지에 남아 어쩌자고 자꾸만 버텨보는 것인가
김형수 詩 – 져야 할 때는 질 줄도 알아야 해
활활 태워
어서 빨리 끝내려는지
산이며 사람이며
다들 붉다
함께했던 친구들도
모두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데
나만 아직 버티고 섰다
너도 이제 붉은 것이
어울린다는 말에
나는 아직 푸른 것이
좋다며 날을 세웠다
져야 할 때란 걸 알면서도
나는 아직 지지 못하겠다
나는 내 몸에 새겨진
봄의 햇살과
여름의 비바람을 어루만졌다
나는 나를 설득했다
져야 할 때는
질 줄도 알아야 해
빌어먹을, 산 너머 노을은
왜 이리 눈물겹도록
붉고 아름다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