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지를 태우며

사십구재를 지내기 위해 아버지 댁을 찾았다.
주인을 잃은 집은 시간도 잃은 듯했다. 현관에는 슬리퍼와 운동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소파 팔걸이에는 리모컨과 안경이 같은 방향으로 기대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조제약과 영양제가 차례로 늘어서 있었고, 건조대의 그릇들은 서로를 반쯤 포갠 채 멈춰 있었다. 늘 그러셨듯이 모든 것이 단정했다. 어쩌면 매일을 마지막처럼 정리하며 살아오신 건 아니었을까.

작은방 문을 열자 묵향과 오래된 종이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서예 연습을 위해 아버지가 차곡차곡 쌓아둔 신문지 뭉치였다. 한 장씩 반듯하게 펼쳐 정리하시는 모습을 보며 무심코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뭘 이렇게 많이 모아두셨어요? 추사라도 되시게?” “그러게. 죽기 전에 이걸 다 쓸 수나 있을까 싶다.” 농담처럼 던진 내 물음에 담담히 돌아온 대답이 오래도록 마음에 박혔다. 아버지에게 시간은 이미 유한한 것이었다.

지난해 봄, 좀 더 좋은 만년필용 종이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 반차까지 내고 을지로로 향했다. 지류사에 들러 종이의 질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두께를 재어보고, 색감을 살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위한 물건을 고르는 데 두어 시간을 훌쩍 보냈다.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깨달았다. 정작 아버지는 늘 신문지에 붓글씨 연습을 하셨다는 것을. 그리고 아버지의 글씨체를 제대로 본 적조차 없다는 것을.

퇴근길에 동네 문구점에서 화선지 한 묶음을 샀다. 집에 돌아와 화선지를 서랍에 넣으며 다짐했다. 다음 주말에는 아버지 곁에 앉아 함께 붓을 들어보겠다고. 하지만 그 다음 주말에도, 또 그 다음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다. 아버지가 떠나실 때까지 화선지는 서랍 속에서 한 번도 펼쳐지지 못한 채 잠들어 있었다.

건네지 못한 화선지에 불을 붙였다. 작은 마음만 냈으면 이처럼 후회하지 않았을 그 순간들을 나는 무심하게 지나쳤다. 고요의 시간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가닿지 못한 마음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