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사랑이지 - 오로라 레드 맘바 만년필로 필사

벚꽃 아래였던 거지. 바람이 속눈썹을 스윽 스쳐 갔던 거지. 순간 살얼음도 녹고 먼 산봉우리 눈도 녹아 나는 그 핑계로 두근거리며 당신을 불렀던 것인데 그러니까 봄, 봄이었던 거야. 바람들 가지런한 벚나무 그늘에 앉아. 커피 내리기 좋은 평상이었던 거야.

햇살은 야위었지만 당신 뺨을 비추기엔 모자라지 않아서, 나는 당신 앞으로 커피를 슬며시 밀어놓았던 것인데, 커피잔 휘휘 저으며 지금까지 한 이별은 까마득히 잊고 당신과의 이별만 걱정이 되었던 것인데, 꽃이 지고 꽃이 다시 피는 사이 벚꽃잎 스쳐 간 허공을 쓰다듬으며 이르길……

우리 한 생애가 이렇게 나란히 앉았으니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사랑이지. 커피는 식어도 봄날이 지나가도 꽃이 핀 정성은 있었네. 말간 사기잔 조심히 커피 물을 끓인 보람도 가득했네.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사랑이겠지 –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中


책상 위의 머그컵 만녀필, 잉크, 독서대

거실에 흩날리는 고양이 털이 유월 햇살에 반짝인다. “사랑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사랑인가?” 아내에게 물었다. “뭐래…?” 아침부터 사랑 타령 말고 고양이 화장실이나 비우라는 핀잔을 들었다.

양 무릎 옆에 고양이 두 마리 나란히 끼고 앉아 녀석들 등을 쓰다듬던 아내가 대뜸, “그래…. 이것도, 이것도 사랑이지.”라고 말하며 찍찍이로 녀석들의 뽑힌 털을 거둬들였다. “그러게…, 저놈들이 사랑을 알까 싶지만, 저들과 우리 생애가 나란히 앉았으니,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사랑이겠지.” 창문 타고 넘어오는 바람이 양손 야물게 쥐고 좋아 날뛰는 아이 같다.

모두 좋은 금요일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