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라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바람이 일정하게 흐르고, 구름이 옅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내 두 손으로 만든 노란 가오리연.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자유’라는 감각을 느꼈던 순간은 그 연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던 바로 그때였는지도 모른다.

가오리연을 만들려면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했다. 면사무소 뒷마당 울타리 근처에서 구한 신우대, 농사짓던 큰집 창고에서 얻은 두세 겹짜리 종이 포대, 그리고 밥풀이었다. 연을 만들 때는 인쇄되지 않은 안쪽의 깨끗한 면을 골라 쓴다. 포대를 사각형으로 자르고, 얇게 쪼갠 신우대를 밥풀로 하나하나 이어 붙인다. 문구용 풀이 있을 리 없는 시골에서, 밥풀은 가장 끈끈한 접착제였다.

풀이 마르면 귀와 꼬리에서 시작된 세 줄을 하나로 모아 중심을 맞춘다. 가장 중요한 건 줄의 중심이다. 아무리 공들여 만든 연이라도 그 교차점 하나가 어긋나면 연은 제자리를 맴돌 뿐, 끝내 떠오르지 못한다. 연줄의 중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한 점이 연의 방향과 속도, 고도를 조율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어떤 태도와 가치관, 말없이 단단한 신념 같은 것들이 결국 삶의 궤도를 정한다. 삶도 연도, 중심을 잡아야 비로소 떠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은 언제나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람은 밖에서 불어오지만, 연의 방향은 줄의 중심이 결정한다.

기억 속 그날은 해가 마을 끝 교회 십자가 위에 걸려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내 몸통보다 더 큰 노란 가오리연을 들고 마을 창고 옆 논으로 향했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 위, 발목 높이로 잘린 벼 밑동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치 활주로의 유도등처럼, 조용히 날아오를 길을 밝혀주는 것 같았다.

동생은 연을 들고 열 발짝쯤 뒤로 물러섰다. 나는 연줄을 움켜쥔 손을 높이 들어 바람을 기다렸다. 기류가 피부에 닿는 순간, 나는 벼 밑동 사이로 달렸다. 손아귀로 전해지는 바람의 저항이 점점 거세졌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줄을 풀어가며 논두렁을 따라 달렸다. 그리고, 순간 누군가 낚아채듯 연이 솟구쳤다. 붉게 물든 하늘을 가르고, 점점 더 검푸른 높이로 밀려 올라갔다. 나는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됐다. 동생과 나는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가오리를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무서웠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연을 데려가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줄을 꽉 붙잡았다.
그 무서움은 곧 두근거림으로 바뀌었고, 마침내 벅참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만든
처음이자,
진짜였던
자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