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장아찌를 받은 지, 딱 일주일만이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단 하나의 질문뿐이었다. ‘응급실로 가셨다. 그다음은?’ 초조한 마음에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1층에 멈춰서 올라올 생각 없는 엘리베이터도,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고 꾸물거리는 앞차도, 평일인데도 꽉 막힌 고속도로도, 응급실 주차장이 만차라서 한참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하는 것조차…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의료 대란의 영향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다행히 수술은 적시에 이뤄졌다. 고마웠다. 새벽에 아버지 댁을 찾아간 큰아버지도, 수술했는지 확인 전화를 주신 119 대원도, 옷가지를 챙겨줬던 보안 직원도, 아버지 얼굴을 꼼꼼하게 닦아주었던 간호사도, 무사히 수술을 마쳐준 의사도… 모두 고마웠다.


수술을 마친 아버지는 일주일 정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중환자 치료가 가능한 2차 병원의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

수술, 중환자실 회복, 전원. 모든 과정이 정신없었다. 전원 절차를 끝내고서야 차분하게 집중치료실(중환자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치료실에는 아버지와 비슷한 증세의 환자들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환자들의 손에는 호흡기를 만지지 못하도록 장갑이 씌워져 있었다.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신생아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막혔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공간이었다. 거대한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다시 한 주가 지나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안색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마비로 굳은 손을 주물러 엄지척👍을 만들어 드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비게이션이 평소와 다르게 서해안고속도로를 안내했다. 군산을 지날 무렵이었을까. 하얀 눈송이들이 세상을 덮기 시작했다. 날리는 눈발 속에서 ‘탄핵안 가결’ 뉴스를 보았다.

멈출 생각이 없는 눈이 세상을 덮었다. 소복한 눈은 커다란 이불이 되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걱정과,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혼돈마저 모두 덮어버렸다. 그제야 비로소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