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몰 베개 파인라이너 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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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사실조차 잊어버릴 만큼 긴 기다림 끝에, 마치 선물처럼 ‘베개 파인라이너’가 도착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한 택배 상자라 그런지 유난히 반가웠습니다.






사실, 이 펜이 낯설지는 않습니다. 지난 6월 ‘더 파워풀’ 공연 당시, 현장에서 실물을 먼저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전시되어 있던 제품은 ‘더 파워풀 한정판’이라 지금 제 손에 들린 것과는 색상이 달랐지만, 직접 쥐어보고 시필했을 때 느꼈던 묵직한 손맛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1. 구성품 및 호환품

겸손몰 베개 파인라이너 사용기
색상은 ‘록(청록)’과 ‘자(자주)’ 두 자루를 선택했습니다. 실물을 직접 확인해보니, ‘록’ 특유의 깊고 차분한 색감이 마음에 들어 주력으로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패키지는 전작인 ‘베개 만년필’ 때보다 한층 정돈된 인상입니다. 뚜껑을 열면 본품인 파인라이너와 리필 심, 그리고 보증서가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게 수납되어 있습니다.
*판매 시 기본 구성품에 여분의 리필심을 하나 더 포함해서 판매했습니다.

리필 심은 배럴을 돌려서 간편하게 교체할 수 있습니다. 지난 만년필 모델은 배럴 분리가 무척 뻑뻑해서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적당하고 부드러운 체결 강도로 개선되어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뚜껑의 내구성 마감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구조적으로 사각 뚜껑은 원형보다 모서리 부분에 ‘응력 집중’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설계 단계에서 별도의 보강이 없으면 사용 중 균열이 발생할 위험이 큽니다. 지난 만년필 모델에서도 뚜껑 크랙 이슈가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보강이 이루어지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육안상으로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여, 내구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펜을 손에 쥐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데 조심해야겠습니다. 뚜껑을 펜 뒤에 끼우는 것도 주의해야 할 듯싶습니다.

호환되는 리필은 ‘슈미트 6040’, ‘파버카스텔 파인라이너 리필’ 등이 있으며,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개당 10,000~11,000원 선입니다. 대량 구매 시에는 아마존이 조금 더 저렴합니다. 2025년 12월 12일 기준, 1팩(2개)에 9.90 달러입니다. 무료배송은 5개(57.42달러) 이상 구매 시 적용됩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개 당 8천 원 정도 되겠네요. 리필 구매를 고려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하여 가지고 있는 ‘몽블랑 롤러볼 리필’을 끼워보았으나, 길이가 맞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2. 디자인과 그립감

이 제품의 시그니처인 ‘베개’를 모티브로 한 사각 배럴은, 단순히 독특함을 넘어 한국적인 우아함을 풍깁니다. 특히 문양 디테일은 지난 만년필 모델보다 훨씬 깔끔하고 정교하게 마감되었습니다. “이 가격에 이런 품질이 가능한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스테인리스의 묵직한 광택과 유려한 선의 조화가 무척 매력적이라, 책상 위에 올려두면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가 되는 듯한 존재감을 뽐냅니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실 ‘그립감’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약간의 적응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둥근 펜에 익숙한 손에 사각 그립은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만년필 펜촉과 달리 파인 라이너는 특정 방향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그립만 익숙해진다면 필기에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베개 파인 라이너는 무게 중심이 펜촉 쪽으로 쏠려 있는 ‘저중심 설계’를 자랑합니다. 처음 쥐었을 때는 꽤 무겁다는 인상을 받았고 장시간 필기가 가능할지 의심도 들었지만, 막상 손에 힘을 빼고 써보니 펜 뒤쪽이 날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고정되었습니다. 낯섦은 잠시뿐이고, 오히려 손에 힘이 덜 들어가는 묘한 매력을 발견하였습니다.
3. 필기감

파인라이너는 만년필과 볼펜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독특한 필기구를 지향합니다. 종이 위를 지날 때마다 전해지는 마찰감은 쓰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줍니다. 잉크 흐름이 풍부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어, 한글 자모의 삐침이나 맺음을 명확하게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덕분에 평소보다 글씨체가 한결 정돈되어 보이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만년필의 감성을 좋아하지만 관리가 부담스러웠던 분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 제가 소장하고 있는 다른 펜들과 함께 시필을 해보았습니다. 비교군은 베개 파인라이너, 스태들러 파인라이너, 사쿠라 피그마 마이크론, 윈저앤뉴튼 파인라이너, 그리고 몽블랑 롤러볼과 유니볼 에어/아이 마이크로입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는 부분이라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만, 베개 파인라이너(슈미트 리필)는 사쿠라 피그마, 윈저앤뉴튼, 유니볼 에어 마이크로와 비슷한 필기감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무게감입니다. 기존의 파인라이너들은 바디가 플라스틱이라 지나치게 가벼운 점이 아쉬웠는데, 베개 파인라이너는 묵직한 바디가 그 아쉬움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느낌입니다.
4. 총평

여러 파인라이너를 써봤지만, ‘베개 파인라이너’는 확실히 자신만의 영역이 뚜렷한 물건입니다. 보통의 파인라이너가 ‘가볍게 쓰고 버리는 도구’에 가까웠다면, 이 제품은 파인라이너라는 심(Refill)에 ‘품격’이라는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기존 플라스틱 바디 펜들이 주지 못했던 묵직한 안정감은, 왜 우리가 좋은 도구를 써야 하는지를 손끝으로 증명해 줍니다.
• 장점: 독보적인 한국적 디자인과 마감 품질, 저중심 설계가 주는 안정적인 필기감, 그리고 슈미트 리필 호환성.
• 고려할 점: 사각 그립은 사용자 취향에 따라 초반 적응 기간이 조금 필요할 수 있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난 ‘베개 파인라이너’는 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사실 지난 ‘베개 만년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만년필 모델은 제게 큰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사각 배럴의 특성상 고정된 펜촉의 각도가 제 필기 습관과 미묘하게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파인라이너는 달랐습니다. 펜촉의 방향을 탈 필요가 없는 구조 덕분에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을 안겨주었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그립이나 각도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롯이 쓰는 행위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상 위를 지키는 아름다운 오브제로서, 그리고 사각거리는 소리로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도구로서 당분간 제 일기장 옆자리는 이 ‘베개’가 차지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