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월

꽃이 피고 지듯이 – 방준석

나 이제 가려 합니다아픔은 남겨두고서당신과의 못다 한 말들구름에 띄워놓고 가겠소 그대 마음을 채우지 못해참 많이도 눈물 흘렸소미안한 마음 두고 갑니다 꽃이 피고 또 지듯이허공을 날아 날아바람에 나를 실어외로웠던 새벽녘 별들 벗 삼아이제
1410월

고래를 기다리며 – 안도현

휴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나섰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였다. 좋은 작품들도 보고, 근사한 길도 걷고, 또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처음 맛 보는 낮선 음식을 즐겼고, 북적이는 카페에 서서 콘파냐와 에스프레소도 즐겼다. 모든 것이
0710월

개사돈 – 김형수

종로는 언제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다. 길을 지나다 ‘흘레붙었다’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면서도 무슨 말인지 언뜻 생각나지 않았다. 가물가물한 기억들이 이마 위에서 나풀거렸다. ‘흘레하다’ 또는 ‘흘레붙다’라는 말은 짐승들의 교미를
0710월
져야 할 떄는 질 줄도 알아야 해3

져야 할 때는 질 줄도 알아야 해 – 김형수

때깔 고운 잎이라면  시샘할 일도 아니지만 미워할 일도 아니다  가을 가고 겨울 오면... 흔적조차 없다지만 그것은 또 그것의 일  나무라면 그 나이테 안에  꽃이라면 그의 작은 씨앗들 안에  그가 땅 위에서 서툴게 누렸던  청춘을 남겼을 터  그가 사랑했던 님 앞에 닿아보기 위해
239월
SRT_나주역

완행열차 – 허영자

무에 바쁜 일이 있어…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를 뒤로하고, ‘애틋이 숨어있는 쓸쓸한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을 뒤로하고… 또다시 ‘어둠에 젖은 종착역’을 향해
169월
여림 - 나의 하루 라미 2000 만년필과 로버트 오스터 블루워터아이스 잉크로 필사

나의 하루 – 여림

자갈밭을 다 지났나 싶었는데 바위가 길을 막고 섰기도 하고, 그 또한 겨우 지났나 싶었는데, 커다란 물웅덩이를 건너야 할 때도 적지 않다. 어떻게 된 것이, 모퉁이마다
099월
감사하다썸네일

감사하다 – 정호승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길을 걸었다아름드리 플라타너스 왕벚나무들이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둥이 부러지거나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나무들의 몸에서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쥐똥나무는 몇 알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잎도지붕
268월
안부전화

안부 전화 – 나태주

지인께 다시 안부를 물었다. 그냥 그래요. 아직은 별일 없습니다. '아직'이란 말이 '언젠간'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늘은 점점 높고 푸르나, 그 아래 세상은 점점
077월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 F닙과 캡

몽블랑 149 피스톤 오일링

마이스터스튁 149에 잉크를 바꿔 채우다가 피스톤이 너무 뻑뻑한 듯해서 오일링이 필요하다 싶었다. 이것 때문에 매번 A/S를 보낼 수도 없는 일이라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전용 렌치 구입 먼저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6, 149 피스톤을
246월
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할머니

그리움에 식칼을 꽂았다

“보고픈… 막, 그리운 사람 있어요?”“그리운 사람요?”“네, 세상에 없어서 볼 수 없는 사람은 빼고.”“글쎄…”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은 시장에 갔다. 장이 서는 날이라고 했는데 셔터가 내려진 점포가 적지 않았다. 중앙 통로를 지나 국밥
166월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사랑이지 - 오로라 레드 맘바 만년필로 필사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벚꽃 아래였던 거지. 바람이 속눈썹을 스윽 스쳐 갔던 거지. 순간 살얼음도 녹고 먼 산봉우리 눈도 녹아 나는 그 핑계로 두근거리며 당신을 불렀던 것인데 그러니까 봄, 봄이었던 거야. 바람들 가지런한 벚나무 그늘에 앉아.